빗소리를 배경 삼아 에릭은 희게 빛나는 거대한 직사각형 모양의 문을 거진 십 분째 노려보고 있었다. 이성은 당장 뒤돌아 원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하고 있었지만 한번 터져나온 욕구가 그를 이곳에 있게 했다. 어떻게 보면 고민할 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꽤나 드문 상황인지라 망설임이 생긴 것이리라. 조금만 맛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쪽으로 마음이 점점 기울고 있을 때였다. 이곳에 있으면 안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릭, 뭐해요?"

순간 나쁜 장난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가슴이 철렁했다. 그 다음 찾아온 것은 의아함이었다.

"찰스? 왜 안 자고..."
"에릭이 없어서 눈이 떠졌어."

두 팔을 내밀며 다가온 아이를, 에릭은 가볍게 안아들었다. 내밀었던 두 팔은 자연스레 에릭의 목덜미를 감쌌고, 이어 동그란 이마가 닿았다.

"에릭이 책 읽어줘서 잠들었는데 가버려서 깼어. 그러니까 같이 자."

아이의 당당한 요구에 에릭은 난처해졌다. 할 일이 산더미 같아 철야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찰스를 재운 뒤 답지않게 당분이라도 보충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주방에 나왔던 건데. 찰스가 깨버렸으니 밤에 간식을 먹는 행위는 있어선 안되는 것이었다. 사무실이었다면 담배로 속을 달랬겠지만 집에선 무리였다. 일단 다시 재워야겠군, 생각하며 에릭은 방으로 향했다. 소박하지만 따듯한 느낌으로 나름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작은 방 한 켠 아이의 침대에 누이려하자 찰스가 목에 꼭 매달려왔다.

"또 가버릴 거지. 같이가 아니면 싫어."
"잠들 때까지 여기 있을게."

"아까도 에릭이 없어져서 깼단 말이야. 같이 자."

"이 침대는 일인용이야."
"그럼 에릭 방으로 가면 되잖아."

분명 잠꼬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얼굴인데 왜 이리 떼를 쓰는 거지. 에릭이 저도 몰래 한숨을 쉬자 찰스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지기 시작했고, 에릭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됐다. 아무리 달라붙어도 말 섞지 말고 그냥 빨리 눕혀놓고 나왔어야 했는데...일에 치여 애 보는 팁을 잠시 잊은 5분 전의 자신을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찰스, 이런 걸로 울면 안돼."
"나...나는....에릭이랑 자고 싶은데....에릭은 싫어?"
"그런 문제가 아냐."
"에릭은 내가 싫어?"

최대한 회피해보려던 찰나 던져진 아이의 돌직구에 에릭은 할 말이 곤궁해졌다. 되도 않는 실랑이를 하기엔 너무 피곤했던 탓도 없잖아 있겠지만, 이래서야 무슨 말을 해도 들어먹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어째서 열 살짜리 꼬마한테 한창 달아오른 애인이 할 법한 대사를 듣고 있어야 하는 거지. 게다가 에릭 렌셔는 차가워 보이는 껍데기 만큼 반비례해 제 책임 하의 사람에겐 관대한 남자였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찰스에게 한없이 약하다는 것으로서...이렇게 된 이상 져 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에릭의 팔 안에서 찰스는 언제 울먹였냐는 듯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좋게 말해도 미니멀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간신히 붙여줄 법한, 어떻게 봐도 한없이 살풍경한 방 한가운데에 달랑 놓인 침대에 찰스를 내려놓고, 에릭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같이 침대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믿을 수 없는 건지 에릭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찰스의 시선이 따라오는 게 느껴져 속으로 한숨을 한번 더 내쉬었다. 잠옷을 입고 찰스 옆으로 비스듬히 앉자 곧 허리께에 달라붙어 온다. 자신보다 조금 높은 아이의 체온이 따스했다. 곱슬곱슬 부드럽게 웨이브 진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으며 에릭은 사이드 테이블에 올려뒀던 서류를 집어들었다. 답지 않은 짓은 관두고 일이나 했으면 이런 상황은 없었을 거라며 자신에게 던진 핀잔은 곧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량에 밀려 사라졌다.

"먼저 자. 난 봐야할 게 좀 있어."

여기서 더이상 떼를 쓸 수는 없다는 걸 아는 찰스는 작게 응, 하고는 바로 눈을 감았다. 곧 이어 들려오기 시작한 아이의 고른 숨소리를 양분 삼아 손에 든 서류를 해치우고 나서야 간신히 에릭도 베개에 머리를 댈 수 있었다. 허리춤에서 찰스의 팔을 떼어내는 게 조금 힘들었지만. 다행히 아이는 깨지 않았고 두 사람은 그날 처음으로 한 침대에서 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릭은 이 날을 조금 후회하게 되는데, 찰스가 갖은 핑계를 대며 그의 침대를 노리게 됐기 때문이었다.


 


+야근 후 전기장판의 마법이 내 의식의 흐름을 이렇게 끌고간듯...분명 시작할 땐 이런 내용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에릭 직업은 뭘까...;;; 왜 아이 찰스랑 사는 걸까...내 무의식엔 뭐가 있는 걸까.....


크리스마스 만찬

2014. 12. 2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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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에릭] photo

잡동사니 2014. 11. 21. 15:16

찰칵

찰칵

찰칵


찰스는 정신없이 누르던 셔터를 잠시 멈추고 그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테이블을 체스판의 한 칸으로 봤을 때 나이트를 두 번 정도 옮길 수 있을 만한 거리-말하자면 이 크지않은 까페의 끝에서 끝 정도-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발견한 것은 편집장의 핀잔에 살풋 짜증이 올라 달디단 커피에 생크림까지 추가해서 한 모금 마신 후였다. 당분의 강력한 작용으로 이성을 찾고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의 레이더가 정상 작동한 것. 검은 셔츠와 바지, 잿빛의 트렌치를 걸친 것뿐인 데도 남자는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그들 사이에는 두서너 명쯤 앉아 있었으나 카메라로 포착하기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에스프레소 잔을 앞에 두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폼은 지금 한창 마감 중인 잡지에 끼워넣어도 손색없을 듯했다. 좋아. 몇 장 더 찍고 말을 걸어 볼까. 그리고 다시 카메라를 들어올린 순간, 파인더를 통해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찌푸려지는 미간을 펴주고 싶단 생각을 하며 반사적으로 셔터를 누른 후, 찰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남자는 살짝 고개를 까딱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찰스는 곤란한 미소를 띄우며 얘기를 이었다. 이 미소를 외면한 사람은 여지껏 보지 못했지만 가까이서 본 남자는 바늘 하나 안 들어갈 정도로 딱딱한 분위기를 두르고 있어 조금 걱정이 됐다. 아까까진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먼저 허락을 구할 걸 그랬나. 하지만 그럼 카메라를 의식하게 되잖아...따위의 생각을 하며 변명 아닌 변명을 시작했다. 애초에 자기 본업도 아닌 사진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구구절절 제 신세를 늘어놓자니 아까의 짜증에 이어 처량함이 더해졌지만 어쩌겠는가. 다행히 말을 이을 수록 남자의 미간은 펴졌고, 분위기도 누그러졌다. 


"그래서, 나를 찍고 싶다는 겁니까?"

"네, 잡지에 실릴 지는 확실하진 않지만...그래도 좋은 피사체임은 분명하니까요. 제 자료로 쓰는 것을 허락해주신다면."

"알겠어요. 그 정도라면."


이렇게 선선히 허락을 받다니, 찰스는 10분 전까지 대흉이었던 오늘의 운세를 상향조정했다. 길게 뻗은 손가락이 에스프레소 잔을 들어올리는 순간마저 찍어대는 찰스에게 남자는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는 곧 지워졌다. 


"이제 전 가봐야 합니다만."

"앗, 네. 그럼 혹시 거리에서 전신샷 한번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밖을 향하는 남자와 함께 찰스도 움직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남자는 생각보다 키가 컸다. 딱히 포즈를 취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무심하게 서 있는 모습에 지나가던 행인들이 이쪽을 힐끔대는 것을 보며 찰스는 제 안목에 다시 감탄했다. 이윽고 자연스레 거리의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까지 남김없이 담고 나서야 찰스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깨달았다. 이름...! 이름을 안 물어봤어. 아까 얘기할 때 제 명함은 줬지만 남자의 것은 받지 못했다. 즉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보아하니 남자가 자신에게 연락해 올 것 같지는 않은데다 잡지에 싣는다고 해도 이름이 없으니...어깨를 떨어뜨린 찰스는 제 짐을 찾아 다시 카페로 돌아갔다. 

 

 

 

+콩님의 틧에 삘받아서 걍 써내린 잡설....

++에릭 사복은 참 이쁩니다....그노무 코스튬만 아니면...!!!! 세계 정복도 꿈이 아냐!!!!





다음은 당신이 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