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찰칵
찰칵
찰스는 정신없이 누르던 셔터를 잠시 멈추고 그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테이블을 체스판의 한 칸으로 봤을 때 나이트를 두 번 정도 옮길 수 있을 만한 거리-말하자면 이 크지않은 까페의 끝에서 끝 정도-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발견한 것은 편집장의 핀잔에 살풋 짜증이 올라 달디단 커피에 생크림까지 추가해서 한 모금 마신 후였다. 당분의 강력한 작용으로 이성을 찾고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의 레이더가 정상 작동한 것. 검은 셔츠와 바지, 잿빛의 트렌치를 걸친 것뿐인 데도 남자는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그들 사이에는 두서너 명쯤 앉아 있었으나 카메라로 포착하기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에스프레소 잔을 앞에 두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폼은 지금 한창 마감 중인 잡지에 끼워넣어도 손색없을 듯했다. 좋아. 몇 장 더 찍고 말을 걸어 볼까. 그리고 다시 카메라를 들어올린 순간, 파인더를 통해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찌푸려지는 미간을 펴주고 싶단 생각을 하며 반사적으로 셔터를 누른 후, 찰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남자는 살짝 고개를 까딱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찰스는 곤란한 미소를 띄우며 얘기를 이었다. 이 미소를 외면한 사람은 여지껏 보지 못했지만 가까이서 본 남자는 바늘 하나 안 들어갈 정도로 딱딱한 분위기를 두르고 있어 조금 걱정이 됐다. 아까까진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먼저 허락을 구할 걸 그랬나. 하지만 그럼 카메라를 의식하게 되잖아...따위의 생각을 하며 변명 아닌 변명을 시작했다. 애초에 자기 본업도 아닌 사진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구구절절 제 신세를 늘어놓자니 아까의 짜증에 이어 처량함이 더해졌지만 어쩌겠는가. 다행히 말을 이을 수록 남자의 미간은 펴졌고, 분위기도 누그러졌다.
"그래서, 나를 찍고 싶다는 겁니까?"
"네, 잡지에 실릴 지는 확실하진 않지만...그래도 좋은 피사체임은 분명하니까요. 제 자료로 쓰는 것을 허락해주신다면."
"알겠어요. 그 정도라면."
이렇게 선선히 허락을 받다니, 찰스는 10분 전까지 대흉이었던 오늘의 운세를 상향조정했다. 길게 뻗은 손가락이 에스프레소 잔을 들어올리는 순간마저 찍어대는 찰스에게 남자는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는 곧 지워졌다.
"이제 전 가봐야 합니다만."
"앗, 네. 그럼 혹시 거리에서 전신샷 한번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밖을 향하는 남자와 함께 찰스도 움직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남자는 생각보다 키가 컸다. 딱히 포즈를 취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무심하게 서 있는 모습에 지나가던 행인들이 이쪽을 힐끔대는 것을 보며 찰스는 제 안목에 다시 감탄했다. 이윽고 자연스레 거리의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까지 남김없이 담고 나서야 찰스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깨달았다. 이름...! 이름을 안 물어봤어. 아까 얘기할 때 제 명함은 줬지만 남자의 것은 받지 못했다. 즉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보아하니 남자가 자신에게 연락해 올 것 같지는 않은데다 잡지에 싣는다고 해도 이름이 없으니...어깨를 떨어뜨린 찰스는 제 짐을 찾아 다시 카페로 돌아갔다.
+콩님의 틧에 삘받아서 걍 써내린 잡설....
++에릭 사복은 참 이쁩니다....그노무 코스튬만 아니면...!!!! 세계 정복도 꿈이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