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기 그지없던 하루의 흐름이 조금 달라진 것은 그 소포가 배달 된 것에서부터였다. 평소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는데 일가견이 있는 남매였기에 애용하는 쇼콜라티에숍의 자신작이 집 안에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것이 온 세상이 초콜릿의 향연으로 뒤덮이는 이맘때쯤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핑크핑크함으로 한층 더 레벨업한 패키지의 박스가 저택에 도착한 것은 마침 누구나 한번쯤 간식을 떠올릴법한 오후 4시 근처였다. 직경 30센티미터 높이 20센티미터 가량의 둥근 박스를 받아든 것은, 하필이면 그 소포가 도착하기 얼마 전 조깅을 하겠다고 나가 저택 주위를 돌아 문 앞에 당도한 에릭이었다. 더없이 소녀틱한 분홍색 상자를 든 에릭이 한창 서류와 씨름하고 있던 저를 찾아 서재에 나타났을 때, 찰스는 에릭이 텔레파스가 아닌 것에 대해 마음속 깊이 감사했다. 더불어 때마침 쇼핑을 나가고 없던 레이븐에게도. 에릭은 제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였고, 그래서 그 순간의 즐거움은 온전히 찰스만의 것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음...찰스? 바쁜데 미안하지만 이걸 자네에게 줘야 할 것 같아서."

 

약간 난처한 듯한 -물론 에릭은 일하는 중인 찰스를 본의 아니게 방해하는 것 같아서였겠지만- 표정의 에릭이 풍성한 핑크 리본으로 장식된 상자를 내밀며 말했을 때, 찰스는 무너지려는 제 얼굴 근육을 다잡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에릭은 서재를 가로질러 상자를 찰스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 집으로 배달된 누군가로부터의 선물이라면 당연히 집 주인의 것이라고 여겨 가져온 것이겠지. 그것으로 제 할 일은 끝났다는 듯 뒤돌아 나가려는 에릭을 찰스가 황급히 만류했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기껏 찾아온 이런 이벤트를 놓칠 수야 없었다.

 

"이것, 함께 풀어보고 싶은데. 자네야말로 바쁜가?"

"운동 중이었지만, 잠깐이라면 괜찮아."

 

순순히 방향을 바꿔 책상 옆으로 돌아온 에릭에게 웃어보이고서, 서류 더미를 옆으로 치운 찰스는 상자의 리본을 풀기 시작했다. 뚜껑을 열자 나풀대는 레이스 사이로 갖가지 모양의 초콜릿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리는 찰스를 보며 에릭은 작게 웃었다.

 

"좋은가?"

"물론이지. 이런 선물은 언제든지 환영일세."

"그런 취향인 줄은 몰랐군."

 

놀리는 듯한 멘트를 던진 후 참고하겠네, 라고 덧붙이며 에릭은 주변에 흩어져 있던 리본을 만지작거렸다. 기름한 손가락에 말렸다가 풀어지는 핑크색 리본을 보던 찰스는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정확히 말하면, 이쪽이 좀 더 취향이야."

 

에릭은 순식간에 제 손목에 묶인 리본과 그윽한 미소를 띠고 있는 찰스를 번갈아 봤다.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더니 고개를 젓는 모습에 찰스의 미소는 더 깊어졌다. 속으로 뭐라고 하는지 읽지 않아도 훤히 보였다. 이러는 건 다 자네 한정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해.

 

"그럼 이제 맛보게 해주겠어?"

 

제 말이 충분히 유혹적으로 들렸길 기대하며 찰스가 입을 열었다. 살짝 비뚤어졌지만 나름 고운 자태의 리본을 단 손이 상자로 향했다. 한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던 새빨간 하트 모양의 프랑보아즈 프랄린이 제게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초콜릿을 입술 사이로 밀어 넣는 것으로 임무를 다 한 손가락을 따라 나온 혓바닥이 살짝 훔치고 갔다. 분명 눈썹을 살짝 찡그렸을 거야, 생각하며 찰스는 입 안에 안착한 초콜릿의 단 맛과 셀이 부서지며 흘러나온 리큐르의 향을 음미했다. 눈을 뜨자 역시나 미간에 주름이 진 채로 에릭이 쳐다보고 있었다. 핥아진 손가락을 문지르고 있기는 해도, 리본은 풀지 않은 것을 확인한 찰스가 싱긋 웃었다.

 

“최고로 맛있어.”

 

감상에 덧붙여 상자를 눈짓하곤 “하나 더 안 줄 거야?” 묻자 작은 금박 조각을 얹은 트러플이 내밀어졌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만족한 얼굴을 하는 찰스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에릭도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찰스가 직접 한 개 꺼내들었다. 저를 향하는 초콜릿에 에릭은 고개를 저었다.

 

“초콜릿은 좋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라며 먹을 의사 없음을 나타내는 에릭을 보던 찰스는 방향을 돌려 초콜릿을 제 입에 넣었다. 부드러운 크림 가나슈가 혀를 감싸고 녹아내리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건 다를 걸세.”

 

다시 거절을 표하려는 입술을 어렵지 않게 점령하며, 찰스는 이쪽이 좀 더 달콤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감미로움은, 오래지 않아 입 안에서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중의적인 느낌의 대사를 치려고 했으나...망한듯.

++찰에 행쇼해...!




다음은 당신이 될지 모릅니다!